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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도서 리뷰

일인칭 단수 리뷰/후기 무라카미 하루기 단편소설(별점: 4.3)

by 히도:) 2023. 10. 5.

하루키를 에세이로 처음 만났기 때문에, 처음 그의 소설을 처음 읽어봤을 때 약간은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하루키의 소설을 여러 권 읽어봐서 '하루키스럽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일인칭 단수>라는 제목의 이 단편소설집 속 소설들도 역시 하루키스러웠다. 처음 이 책의 제목과 표지를 봤을 때 바로 '읽고 싶다!'는 게 처음으로 든 생각이었다. 표지도 예쁘고, 일인칭 단수라는 제목도 마음에 들고, 당연히 하루키의 소설이라는 이유에서도 그랬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땐 하루키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 늘 느꼈던 아리송함이 가장 먼저 다가왔다. '이건 무슨 의미지? 왜 인물들은 이런 행동을 하지? 왜 이런말을 하지?'의 연속이랄까. 하지만 오히려 읽으면서 시간이 갈수록 노련한 작가란 이런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하려고 하는 의미와 메시지를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또 미묘하게 놓아둔 느낌이었다. 틀린그림찾기 그림 속 테이블 위에 놓인 아주 자연스러운 머그컵처럼. 

- 돌베개에
지금이란 때 / 때가 지금이라면 / 이 지금을
꿈쩍없는 / 지금으로 만들 수 밖에
 
여자가 읽은 시 중에 왠지 눈에 띄었던 시. 이 작품에서는 '나'가 어떤 '여자'와 함께 있을 때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부분도 좋았다. '아침햇살이 몹시 눈부시고 나른했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낮이든 밤이든 하루키의 묘사는 대체로 마음에 드는 편이다. 
 
- 크림
인생의 크림. 내 힘으로 불가능 할 것 같은 일들에 대해 생각하고 이루려고 노력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얻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중심이 여러 개 있고 둘레를 갖지 않는 원은 간단치 않은 인생의 많은 일들을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야쿠르트 스왈로스를 한화 이글스로 바꿔도 이상하진 않을 듯. 야구를 좋아해본 사람이라면 이 단편에 수록된 시를 보고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부분도 좋았다.
'나도 소설을 쓰면서 그 소년과 똑같은 기분을 맛볼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사과하고 싶어진다. "죄송합니다. 저기, 이거 흑맥주인데요"라고.'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마주치는 기분 아닐까.
 
- 사육제(Carnival)
'만약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내 인생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어느 날, 아마도 멀고 긴 통로를 지나, 내가 있는 곳을 찾아온다. 그리고 내 마음을 신기할 정도로 강하게 뒤흔든다.'
 
-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 일인칭 단수
처음 읽으면서는 뭐지? 싶었다. 그런데 제목을 다시 보니 '일인칭'이라는 단어가 있었고 그건 다른 시점이 있다는 걸로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쪽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말과 행동도 그게 가닿는 쪽에서는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음을 알려주는 듯한 느낌. 수트는 그걸 더 극대화시키는 장치처럼도 보인다. 수트를 모처럼 꺼내 입는 기분에 찬물을 끼얹는 듯 해서.

하루키는 글의 리듬을 굉장히 중시한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나는 하루키의 글에 '글맛'이 있다고 느껴진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느낌적인 느낌. 
 
하루키의 글은 신기하고 또 미묘하다. 글 속 인물들은 특별하지 않지만 어딘가 기묘한 구석이 있다. 일어나는 사건들 또한 그렇다. 판타지가 있지 않을 법한 장소와 상황에서 기이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렇지만 하루키의 섬세하고 공감을 일으키는 묘사는 그런 배경 속 인물들에게 개연성을 부여한다.
보통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비현실적인 일들은 판타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많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얼마간의 불편감을 주는 것 같다. 하루키의 소설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조금 특별한 점이라고 하면, 처음엔 어쩐지 설명하기 어려운 알쏭달쏭함이 자꾸만 거슬리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옅어진다는 것이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명하지 않은 모호성, 끝이 맺어지지 않은듯한 불확실성은 하루키가 글을 풀어나가는 방식과 특유의 묘사 속에 희석되어간다. 결국 그의 글에 혼재되어 있는 다양한 감정과 그의 글을 읽으며 느끼는 모든 인상들은 뒤섞여 희석되다가, '아무래도 괜찮다'는 상태에 이른다. 확실한 결말이 없어도, 지금 꿈을 꾸는 건지 현실을 사는 건지 알 수 없어도, 인물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도, 아무래도 괜찮을 것 같다는.
그때부터 글에 대한 감상은 또다시 시작된다.
이것이 바로 오랜 시간 꾸준히 글을 써 온 그의 노련함이자 그가 영향력 있는 작가인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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